사실 저 시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기마병 중심의 군대가 아니었고 전차부대였음.
《킹덤》 만화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은 형태의 기마병들은 당시 중원 국가들의 전통적인 군대라기보다는, 오히려 북방 유목민들 즉, 흉악하고 악마처럼 묘사한 '흉노'가 먼저 발전시킨 전투 방식이었음.
특히 말을 타면서 활을 쏘는 기마궁술은 북방 초원지대에서 발전한 대표적인 군사기술이었고, 중원 국가들도 결국 그 장점을 받아들이게 됨.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전국시대 조나라임.
조나라 무령왕은 기원전 4세기경 ‘호복기사(胡服騎射)’라는 군사개혁을 실시했음.
말 그대로 ‘호(胡)의 옷을 입고 말을 타서 활을 쏜다’는 뜻임.
당시 조나라는 전차와 보병 중심의 전통적인 전쟁 방식에서 벗어나 북방의 기마전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했음. 《전국책》과 《사기》에 따르면 무령왕은 북방의 임호(林胡), 누번(樓煩) 등과 접해 있는 조나라의 현실적인 군사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호복과 기마·궁술을 도입했음. 당시 기록을 보면 이 개혁에 대한 반발도 상당했음.
특히 신하들은 북방의 옷을 입는 것 자체를 반대했음.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군복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임.
중원 사람들이 보기에 바지를 비롯한 북방식 복장은 ‘호복’, 즉 오랑캐의 옷이었음.
그런데 조나라 왕은 그런 반대를 무릅쓰고 호복을 입고 기마전술을 받아들였음.
그리고 실제로 성과를 내기 시작함. 한마디로 지금 보고 있는 말타고 입는 바지 복장이 바로 '호복'임.
결국 조나라가 기마병을 적극적으로 운용하면서 호복과 기마전술은 점차 일반화되었고, 다른 중원 국가들도 북방 기마전술의 장점을 무시하기 어려워졌음.
즉, 재미있는 것은 이것임.
그들이 오랑캐라고 무시하고 경멸하던 북방민족의 복장과 전투방식을 결국 자신들의 군대에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임.
말하자면 문명이라고 자부하던 중원 국가가 자신들이 무시하던 북방 유목민들에게서 군사적으로 배운 것임.
특별편에서 한번봐서 그런가...새롭지않아서 지루하네....에잉...특별편 내용을 쭉 보면...이거 회상씬 겁나 오래갈듯하다...쳇
답글삭제참아 임마 카이네랑 이목 곧 처형당하니까 떡도 못쳐보고;; 사마상은 토끼고
답글삭제진짜 이야기 전개는 또 먼~~~나라 얘기가 됐네....갑자기 흐름이 끊겼어.
답글삭제이거 봤던건데 재탕이냐?
답글삭제그런데 그거 알고 있음~
답글삭제사실 저 시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기마병 중심의 군대가 아니었고 전차부대였음.
《킹덤》 만화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은 형태의 기마병들은 당시 중원 국가들의 전통적인 군대라기보다는, 오히려 북방 유목민들 즉, 흉악하고 악마처럼 묘사한 '흉노'가 먼저 발전시킨 전투 방식이었음.
특히 말을 타면서 활을 쏘는 기마궁술은 북방 초원지대에서 발전한 대표적인 군사기술이었고, 중원 국가들도 결국 그 장점을 받아들이게 됨.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전국시대 조나라임.
조나라 무령왕은 기원전 4세기경 ‘호복기사(胡服騎射)’라는 군사개혁을 실시했음.
말 그대로 ‘호(胡)의 옷을 입고 말을 타서 활을 쏜다’는 뜻임.
당시 조나라는 전차와 보병 중심의 전통적인 전쟁 방식에서 벗어나 북방의 기마전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했음. 《전국책》과 《사기》에 따르면 무령왕은 북방의 임호(林胡), 누번(樓煩) 등과 접해 있는 조나라의 현실적인 군사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호복과 기마·궁술을 도입했음. 당시 기록을 보면 이 개혁에 대한 반발도 상당했음.
특히 신하들은 북방의 옷을 입는 것 자체를 반대했음.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군복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임.
중원 사람들이 보기에 바지를 비롯한 북방식 복장은 ‘호복’, 즉 오랑캐의 옷이었음.
그런데 조나라 왕은 그런 반대를 무릅쓰고 호복을 입고 기마전술을 받아들였음.
그리고 실제로 성과를 내기 시작함. 한마디로 지금 보고 있는 말타고 입는 바지 복장이 바로 '호복'임.
결국 조나라가 기마병을 적극적으로 운용하면서 호복과 기마전술은 점차 일반화되었고, 다른 중원 국가들도 북방 기마전술의 장점을 무시하기 어려워졌음.
즉, 재미있는 것은 이것임.
그들이 오랑캐라고 무시하고 경멸하던 북방민족의 복장과 전투방식을 결국 자신들의 군대에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임.
말하자면 문명이라고 자부하던 중원 국가가 자신들이 무시하던 북방 유목민들에게서 군사적으로 배운 것임.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볼 부분이 있음.
삭제당시 중원 사람들이 ‘호(胡)’라고 부르던 북방민족들은 과연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
흉노를 비롯한 북방의 여러 민족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이름이 바뀌고 갈라지고 합쳐지면서 다른 민족과 국가를 형성해 갔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함.
중국에서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흉노, 동호, 선비, 오환, 유연 등 여러 이름으로 기록되었고, 서쪽으로 이동한 일부 계통은 훗날 유럽에서 ‘훈족(Huns)’으로 불린 집단과 연결되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음.
실제로 고대 DNA 연구에서도 유럽 훈족과 동아시아의 흉노 사이에 유전적 연결을 보여주는 증거가 나오고 있음. 흉노와 훈족을 완전히 별개의 집단이라고만 볼 수 없다는 것임.
그렇다면 흉노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
내 생각에는 ‘사라졌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임.
그 사람들이 전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집단과 섞이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또 새로운 이름을 가진 집단으로 재편되었을 가능성이 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부는 한반도로 들어왔을 수도 있음.
물론 이것을 단순하게 ‘흉노 = 한국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음.
한반도에는 오래전부터 살아온 여러 토착 집단이 있었고, 북방에서 내려온 집단 역시 여러 차례 유입되었을 것이기 때문임.
결국 지금의 우리는 한반도에 있던 토착 집단과 북방에서 내려온 여러 집단이 오랜 시간 동안 섞이면서 만들어진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음.
최근 고대 DNA 연구들을 보면 동아시아의 인구 이동 역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했음이 계속 밝혀지고 있음. 한 지역의 사람들이 그대로 유지된 것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서로 이동하고 섞이는 과정이 반복되었다는 것임.
그렇다면 우리의 뿌리를 한반도 안에만 가둬서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오히려 한반도뿐만 아니라 만주와 바이칼호수, 몽골고원, 중앙아시아까지 연결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함.
흉노가 훈족으로 이어졌는지, 또 어떤 집단들이 흉노의 후계 집단이 되었는지는 아직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유라시아 초원에서는 수많은 집단이 끊임없이 이동하고 서로 섞였다는 것만큼은 분명함.
흉노 이후에도 선비, 유연, 돌궐, 거란, 몽골 등 수많은 세력이 등장했고, 서로 정복하고 흡수하고 분열하면서 새로운 국가와 민족을 만들어갔음.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 역시 이러한 동북아시아와 만주·초원 세계의 역사적 흐름과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려움.
특히 부여에서 고구려로 이어지는 역사적 관계를 생각하면 북방과 한반도의 연결은 더욱 흥미로워짐.
바이칼호수 주변에는 지금도 부랴트인이 살고 있고, 러시아에는 부랴트 공화국도 존재함.
나는 여기에서 ‘부랴트’와 ‘부여’라는 이름의 유사성도 흥미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함.
왜냐면 부여에서 고구려로 이어지고, 고구려의 옛 산스크리트어로 '무크리' 또는 '부크리'로 불려졌음.
하지만 수천 년 동안 북방지역에서 수많은 집단이 이동하고 분열하고 다시 결합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런 이름의 유사성 역시 앞으로 더 연구해볼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함.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이 ‘말갈’과 ‘몽골’이라는 이름임.
삭제몽골이라는 이름은 시대와 언어에 따라 말골, 몰골, 모골, 무갈 등 여러 형태로 기록되었고, 서아시아에서는 Mongol이 Mughal/Mughul 같은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음.
실제로 영어의 Mughal 역시 Mongol에서 나온 명칭임.
몽골 = 말골, 몰골,물길, 몯골, 모골, 말갈, 무갈, 무크리 로 불려 졌으며 그 어원 말갈/몰골은 말의 고을을 뜻함.
한마디로 말갈은 말을 키우는 고을 이라는 뜻인데 고구려 옛소리가 '몰 골' 즉, '말 골'임.
지금도 '말'을 제주도 방언으로 아직도 '몰'이라고 말함.
이 말을 한자로 바꾸면 '물길'이 되고, 투르크,페르시아, 아랍어에서는 '모골'이라 하고, 힌두어에서는 '무갈'이 됨. 고구려를 옛 산스크리트어로 '무크리', 다른 투르크 방언들로는 '마크리' 또는 '부크리' 등으로 불림.
고구려의 옛 이름이나 외부 기록에 나타나는 여러 명칭에서도 ‘고구려’, ‘구려’, ‘고리’, ‘무크리’, ‘부크리’와 비슷하게 들리는 형태들이 나타난다는 주장도 있음.
특히 일본에서는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이 일본을 공격했을 때 이들을 ‘무쿠리 고쿠리(むくりこくり)’라는 표현으로 부른 흔적이 있음.
실제로 1274년 원·고려 연합군은 일본을 침공했고, 이후 1281년에도 다시 침공했음. 일본에서는 이 사건이 ‘원구(元寇)’로 기억되었고, 몽골과 고려가 함께 침입해 온 충격적인 사건으로 남았음.
그래서 ‘무쿠리 고쿠리’라는 표현을 몽골과 고려를 가리키는 말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음.
이것을 보면 당시 일본인들에게 몽골과 고려가 서로 완전히 무관한 존재로만 인식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물론 여기서도 ‘고구려 = 몽골’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음.
하지만 고대 동북아시아와 유라시아 초원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동하고 서로 섞였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지금의 국경과 민족 개념만 가지고 수천 년 전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함.
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임.
흉노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임.
훈족도, 흉노도, 선비도, 유연도, 돌궐도, 거란도, 몽골도 서로 완전히 단절된 별개의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수천 년 동안 서로 만나고 갈라지고 다시 합쳐졌던 수많은 집단들의 역사로 봐야 한다는 것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부 집단은 한반도로 들어왔고, 한반도에 있던 사람들과 섞였을 것임.
그렇다면 우리의 역사를 한반도 안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만주와 몽골고원, 바이칼호수, 중앙아시아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북방의 역사 속에서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가 ‘남의 역사’라고 생각했던 흉노와 초원민족의 역사가 사실은 우리의 역사와도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을 수 있음.
그리고 징기스칸이 발해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의 19대손이고, 금나라 완안아골타 역시 대야발의 12대손, 고려의 왕건 역시 그 핏줄이 이어졌음. 거기에 청나라 누르하치까지.
더불어 발해라고 썻지만 그것은 중국이 말한 것이고, 진짜 이름은 '고려'임.
중국 말고 주변국은 다 고려로 불렸고, 대조영 역시 '진국' 고려라고 했음.
즉, 왕건의 고려와 북방의 고려. 고구려는 망한게 아니라 두 고려로 이어졌음.
지금도 몽골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몽골이란 이름인지 명확히 알기 어렵지만 우리말로 해석하면 굉장히 말 뜻이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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